오래전 아는 언니가 있는 사진 동아리에서 '서울의 경계에서'라는 제목을 가지고
광화문역 지하에서 사진전을 한적이 있었다.
언니의 사진을 보려고 들렀던 그곳에서 나는
왜인지 무척이나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불쾌해 하는 한 신사분을 보게 되었는데
그분의 말씀은,
이게 도대체 몇십년전 사진을 이렇게 걸어놓고
이걸 지금 서울이라고 전시를 하고 있느냐는 말씀이셨다.
서울의 경계 어느 언저리에서 찍은 21세기의 '서울'의 모습은
그분이 보시기에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이었고
지금처럼 잘살고 보기좋은 서울에 저런데가 어디있느냐고
보기좋은 모습들을 걸어놓고 전시를 해야지
어디서 이런 보도 못한데를 지금의 서울이라고 떠벌리고 전시를 하느냐는 것.
본인이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셨던,
내가 젊을때 고생해서 이루어 놓은것이 서울 한복판의 지금 모습이고
그 모습만이 현대의 서울이고, 대한민국이었던.
그리고 그 사실이 마냥 자랑스러운 한 애처롭고 편협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만 그렇느냐고?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들 산다.
내 친구가 돈이 없어서 아이를 낳고도 냉방에서 겨울을 보냈다는 얘기를 이제서야 해요 라고 하니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하시고
아직도 주 5일 근무하는 노동자보다 주 6일 근무하는 노동자가 더 많은데도
언론에서는 토요일에 공휴일이 많이 겹쳐서 노는 날이 많이 줄었노라고 일반화해서 말을 하고
급식비가 없어서 아이들이 굶는다고 말을 하니
그 아이들이 왜 굶느냐고, 집에가서 밥을 먹는다고 말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을 산다. 내가 사는 세상만을 산다.
이 책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결코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거워서 빨리 읽을수 없게 하는 책이다.
저 노신사처럼 요즘에 그런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화라도 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기때문에 그렇게 우길수도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같은 공장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여 브랜드(?)빵과 일반빵을 구분하여 간식을 주고
30평 사는 집에서는 20평 사는 집 아이와는 친구도 하지말라고 가르치며 어줍짢은 계급을 형성하며
하루전날 계약해지를 문자로 통보하기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금 더 편협함을 벗어나 세상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조금 더 올바른 세상을 보아야겠다고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무엇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요즘이다.
낮은 곳에 피었다고 꽃이 아니기야 하겠습니까.
발길에 차인다고 꽃이 아닐 수야 있겠습니까.
발길에 차이지만 소나무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 더 멀리 씨앗을 흩날리는 꽃.
그래서 민들레는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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